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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20 방콕과 홍콩, 두 거대 도시에 대한 비틀린 추억 - 방콕편 2
주저리 주저리2010. 6. 20. 22:41
난 방콕과 홍콩을 사랑한다. 

특히 두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 미개발지역과 신도시 사이의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스름한 지역의 첨예한 광기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내가 두 도시를 오랫동안 곁에서 바라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멍청한 두 번의 추억이 내게 그런 관념을 새겨버린 것 뿐이다. 

방콕.
2003년, 처음으로 떠난 해외 출장의 장소가 방콕이었다. 
그때 하던 일 중에 하나가, 아시아 퍼시픽 지역에서 대형 서버들의 유지보수 부품을 제시간에 공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종종 핸드캐리라고 통칭되던, 국제 특송 서비스를 나갈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입사 초년병인 내게 부여된 첫번째 임무가 방콕으로 구형 메인프레임 기종의 메모리카드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배달이란게 전해주고 나면 막상 할 일이 없는 것이었고, 나간 김에 하루 정도 더 머물 생각으로 떠난 길은, 태국지사에서 잡아준 호텔이 현지의 고급 호텔이란 것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27살, 혼자 나간 첫출장지. 그것도 방콕. 뭘 하겠는가? 적당히 에너지를 회복한 나는, 주머니에 급한대로 공항에서 환전한 바트화 얼마와 카드 한 장만 달랑 들고 길을 나섰다. 나이트 라이프!! 

택시 기사는 싱글거리며 뭔가 대단히 삐까 뻔쩍 해보이는 건물 앞에 날 내려줬고, 뭐. 그닥 한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놀이가 끝난 후, 난 자신만만하게 방에서 들고나온 꽤나 비싸 보이는 성냥을 내밀며 택시기사에게 여길 갑시다.. 라고 말했다. 

거기서부터 문제. 

당연히 태국어로 "***호텔"이라고 적혀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 성냥에 적힌 말은, 말 그대로 "성냥"이었다. 

난 내가 묵은 숙소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다!!

시간은 자정 무렵. 결국 무작정 타고 출발한 택시는, 비슷비슷한 골목을 이리저리 헤메였고, 길가 모퉁이에 서있는 같은 창녀를 3번째 본 순간, 이 자식이 날 벗겨 먹으려는구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이역만리에서 말도 안통하는 택시기사와 각자의 언어로 한바탕 욕설을 주고 받은 후, 어느 길가에 버려진 나는, 걷기 시작했다. 

한 3시간 쯤 걸었을까? 편의점에서 아이스티를 하나 사며 주머니에 현찰이 거의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종종 거리며 달려오는 똥강아지에게 애정을 과시하려다 뒤따라 오는 개때(진짜 개때였다!)를 마주하며 개밥으로 이승을 떠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눈 앞의 호텔에 뛰어들어 다짜고짜 방을 내놓으라고 했다. 방에 들어선 후, 미니바에 있는 모든 음식물과 음료를 아작낸 후 잠이 들었다.

뭐, 그 다음 날 무려 방콕-서울-방콕을 연결하는 3자통화 끝에 내가 묶은 호텔의 이름을 알게된 그럭저럭 정상적인 휴양을 즐긴 후 귀국했지만, 그때 방콕의 밤거리의 아찔함과 그 향취, 정신 없는 거리와 사람들은 강렬하게 뇌리에 자리 잡았고, 그 후로 몇 번 기회가 될때마다 방콕을 찾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쓰다보니 재미도 없고 지친다. 홍콩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써야겠다. 
Posted by BReal'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