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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3 서울, 단상. 2
주저리 주저리2010. 5. 13. 23:56
* 버스 안에서 끄적거린 글을 옮겨본다.

모바일 블로깅을 해보겠다고 iPhone App을 켰다 금새 포기했다. 멀티태스킹이 안되는 종자인지, 그 작은 키패드를 일일히 찾아 건드리면서 '머리 속의 생각'을 옮긴다는 것이 현재로는 불가능이다. mobile tweeting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생각이 정리된 것을 그냥 옮기면 되기 때문이었나보다.

서울 시내, 그것도 새로 개발된 동네가 아닌 오래된 동네를 관통하며 이 도시를 다시 생각해본다. 애욕의 도시, 애증의 도시.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수도 서울은 촘촘히 수놓인 네온사인 만큼이나 숨죽여 들어찬 어둠으로 구성원을 감싸 안고, 숨겨주고, 때때로 질식시킨다. 이것은 대도시의 숙명일까, 아니면 서울이란 공간의 특색일까?

묘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강요하는 종로의 뒷골목, 공원 옆 어슴푸레 한 길가에 세워둔 차 곁에 기대 담배를 물고 있는 지친 표정의 택시기사, 그다지 많은 버스가 서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묘하게 닮은 꼴로 앉아 있는 영감과 젊은이. 왁자지껄한 어린 녀석들, 술에 취해 이젠 진실인지 허풍인지 구별도 안되는 과거를 되새김질 하는 늙은이들,, 아직 종료의 향수에 젖은 이들을 걷어차듯 시멘트향을 뿜어내는 거대하고 흉칙한 건물들, 묘하게 닮아있는 간판의 물결, 줄지은 버스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지친 사람들, 매캐하지만 익숙한 배기 가스 내음, 멍하니 걸려있는 석탄일의 연등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픈 중년 남자의 발버둥, 비슷비슷한 간판을 넘어 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 각기 다른 가게들.

이제 내릴 곳이다.

서울의 중심을 헤쳐온 후, 다시 서울 밖으로 향하는 길.

서울은 마치 가질 수 없는 여인처럼, 끝없이 두근거리며 다가가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돌아서며 안도하는 그런 장소.

재미 없다.

잠시 광화문 귀퉁이에 서서 사람과 풍경을 바라 보았다. 여긴 뭐가 다를까? 무엇이 이 곳을 영혼 없는 자들의 배회처로 만들고 있는 걸까?

갑자기, 이곳은 사람과 풍경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 대로변의 압도적인 공간감은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이들을 집어삼킨다. 문득 롯뽄기힐즈에 처음 갔을때, 그 거대한 공간에 짖눌려 사람들이 형체 없이 뭉개지고, 그 곳이 텅 빈 박제처럼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압박이 일본인들, 특히 동경인들의 어찌보면 이상한 일탈을 강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함도. 아직 튀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는 언제나 저 공간 앞에 맞설 수 있을까?

내가 그토록 이 곳을 떠나고 싶어한 까닭도 어찌보면 저 콘크리트에 깔려죽기 싫다는 본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잠시 떠나본 삶은 내가 얼마나 이 공간에 길들여져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나약해져 있는지를 아프게 일깨워졌다.

나로 남을 수 있는 길. 그 길을 찾아야 한다.


Dream Theater - Metropolis Pt.1 (When Dream & Day Reunite)

* 옮기고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 재미 있네.. 수첩이란 것은 즐거운 것이구나.
Posted by BReal'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