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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6 애정 결핍. 2
주저리 주저리2010. 4. 26. 15:46
기억이 나는 5세 이후, 아니, 증언에 따르면 그 이전부터 우리 집은 맞벌이 였다.

아버지는 택시 회사, 버스 회사, 정비 공장.. 어머니는 옷장사.

집에서 날 봐주시던 할머니가 사실 할아버지의 후처였다는 것을, 우리 집에 계셨던 이유가 큰어머니가 쫓아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된 건, 내가 나이 30줄에 접어든 이후였다.

7살 때, 모종의 사건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서 살던 집에서 쫓겨 날때, 집에 있던 피아노가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어딘가로 옮겨질때 서럽게 울던 누나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내 누이의 첫모습이었다.

2층 양옥에서 나와, 13평 아파트로 들어갔을때, 아침에 일어나면 날 기다리는 것은 적막함과, 전화기 옆에 놓여있는 버스표 2장, 그리고 밥값 5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예닐곱 정류장을 지나 국민학교에 도착했을때, 그때 다니던 국민학교에 대한 기억은 앞과 뒤의 건물을 이은 이상한 통로. 눅눅함과 곰팡내, 왁스 발라 미끌미끌한 바닥이 전부일 뿐, 다른 기억은 없다.

밥 한 끼 먹고(아직도 그 중국집 배달 아저씨의 얼굴이 기억난다) 잠들때 쯤 돌아오신 어머니는, 억척스레 보험을 파셨고, 아버지는 글쎄.. 뭘 하셨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부모님의 목소리, 얼굴에 부벼지는 아버지 수염의 까끌함. 그리고 아침.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어머니는 보험과 책을 지나 화장품을 파셨고, 아버지는 어딘가 회사에 나가셨다.

그리고, 이젠 내가 바빠졌다. 오전 6시에 학교로, 밤 12시에 집으로.

대학에 간 후엔 집에 있을 필요를 못 찾았고, 그래서 선택한 학교 앞 자취방엔 그저 저녁 때 들어오면 유희열의 라디오가 내게 말을 거는 전부 였다.

난, 내가 혼자 있는 것을 꽤나 잘 견딘다고 믿었다. 그 후에 군대를 강원도로 가게 되고, 난생 처음 가본 곳에서 26개월을 보내고, 다시 이번엔 친구와 함께 살게 되었을때도, 누가 날 건드린다든가 내게 이러저러한 조언을 던지거나 하는 것을 경멸했다. 네가 뭔데, 난 혼자서도 이만큼 해왔는걸.

그런데,

나이 30이 훌쩍 넘어, 이젠 아이까지 있는 입장에서, 요즘은 누군가의 손길이 그립다. 누군가 다독이는 손길, 누군가 응원해주는 목소리, 누군가 챙겨주는 작은 것 하나가 사무치게 그리워서 부르르 떨면서 지낸다. 퇴근 후 집에 갔을때 나를 향해 까르르 뛰어오는 천사 같은 딸아이의 웃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엇.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여튼 그립다. 누군가 내게 기대준다는 것, 그리고 내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것을 이렇게 강렬하게 느낀 적은 처음이다.

지난 몇 년간의 어긋남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과연 어떤 행위에 대한 그리움인지 혹은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대상이, 처음으로 내게 먼저 따뜻한 손길을 보내준 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지우려 / 혹은 덫칠하며 가리고 있지만, 결국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줬던 것은 그런 손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가 빠져들었던 늪의 근원에도 그런 것이 있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뭐, 이렇게 이야기 해봐야, 결국 내가 누군가 남을 필요로 하다고 여기게 된 순간은 내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땅바닥에 떨어진 후, 혼자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란 괴물과 부딪힌 후였다. 그게 언제냐고? 하하.. 글쎄. 차츰 차츰 추락한 것이니 언제인지 딱 찍으라면 좀 막막하지만, 2번의 사건이 있었던 듯 하다. 하나는 약 쳐먹고 헤메다가 일어난 응급실에서, 병원비를 치를 돈이 수중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다른 한 번은 어머니의 사채 덕에 회사 앞에 사채업자가 찾아왔을때. 두 번 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내게 구원의 손을 내밀었고, 아직 그 은혜를 갚지 못한채 그냥 얼굴 붉히며 살게 되었다. 우와 정말 무력하고 멍청하구나... 하고.

어쩌면 이젠 그냥 재고가 떨어져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퍼주고, 반응이 부족한 만큼 더 내가 내놓아서 절대값을 맞추려던 멍청한 일의 에너지가 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딴 방식을 선택한 것이 그저 내가 편하자는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참으로 멍청한 인생임을 자인하게 된다. 혼자서 나갈 줄 따위 걸지 않고 우물을 파 내려가는 것.

비가 온다.




Posted by BReal'96